‘패션은 자유다.’
이건 누구나 동의할 만한 요즘 시대의 기본 감각이다.
누가 어떤 머리 모양을 하든, 옷을 어떻게 입든,
그건 철저히 개인의 선택이며 표현의 자유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성이 머리를 길렀다는 이유로 ‘경고장’이 발부되고,
심지어 벌금까지 부과되는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 주인공은 바로, 인도네시아다.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진 나라.
하지만 이 나라는, 지역에 따라 법적 잣대도 문화적 분위기도 매우 다르게 적용된다.
특히 인도네시아 아체(Aceh) 주에서는
‘남성이 머리를 길게 기르는 행위’ 자체가 이슬람 율법을 위반하는 행동으로 간주되어
경찰이 단속하고, 경고장을 발부하며, 반복 시에는 벌금 혹은 구류까지 가능한 상황이다.
이건 단순한 스타일 규제가 아니다.
그 속엔 종교, 문화, 국가 권력, 성 역할 고정관념이 얽혀 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왜 남자가 머리를 기른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가’라는 흥미롭지만
민감한 주제를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현실적이고 부드럽게 풀어보려고 한다.
Sebastian Voortman
인도네시아, 스타일에 ‘종교적 규범’을 적용하다
아체 주의 특별한 법률 시스템
인도네시아 전체는 헌법상 세속국가지만,
아체 주는 예외적으로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지방 법으로 채택한 지역이다.
즉, 중앙정부는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아체 주에서는 종교적 가치가 곧 법이 되는 지역이다.
2001년, 중앙정부는 아체의 무장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
일종의 타협책으로 샤리아를 부분적으로 인정했고,
그 결과 아체 경찰은 ‘종교경찰’ 역할도 함께 수행하게 되었다.
종교경찰의 역할: 외모도 감시 대상
샤리아 경찰(현지 명칭: "Wilayatul Hisbah")은
일반 경찰과 다르게 복장, 행동, 외모 등 ‘종교적 기준’에
어긋나는 행위 전반을 단속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단속이 옷차림, 이성 간 거리, 화장 유무,
머리 길이, 헤어스타일까지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즉, 여성이 노출 있는 옷을 입거나
남성이 화장 또는 긴 머리를 하는 건
이슬람적 남성성·여성성에 어긋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 사례
머리 길다고 벌금, 그 현장을 보다
학생 시절 ‘긴 머리’ 했던 청년의 체험담
2018년, 아체주에 살던 대학생 하피즈(Hafiz, 가명)는
평소 음악을 좋아해 록스타처럼 머리를 길렀다.
그러던 중,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지나가다가
샤리아 경찰에게 정지 명령을 받았다.
경찰은 다짜고짜 “너는 남자 맞냐?”, “머리가 왜 이렇게 길어?”라며 질문했고,
하피즈는 간단한 신분 확인 후, 현장에서 ‘복장 불량’에 대한 경고장을 받았다.
경고장에는 ‘남성의 긴 머리는 이슬람 율법에 부적절하므로 자제하라’는 문구가 있었고,
같은 행위 반복 시에는 벌금과 짧은 구류가 가능하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피즈는 결국 그 다음 날, 머리를 잘랐다.
바버샵 주인, ‘머리 길이’ 때문에 영업 정지
2022년, 아체 주의 한 바버샵 주인이
‘남성 고객에게 너무 현대적인 스타일(롱헤어, 염색, 언더컷)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종교 경찰에 의해 영업 정지 명령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 주인은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해줬을 뿐인데 왜 불법이냐”고 반발했지만,
경찰은 “해당 헤어스타일이 이슬람 규율을 위반하며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이 사례는 현지 언론에 보도되며 ‘스타일 검열’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머리 길이가 왜 종교적 문제일까?
이 질문은 아주 근본적인 걸 묻는다.
‘왜 단순한 외모를 종교나 법이 통제하려 드는 걸까?’
여기에는 이슬람 율법이 생각하는 성별 규범이 핵심이다.
- 이슬람 전통에서 남성과 여성은 복장과 외형에서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하며
- 남성이 여성처럼 보이려 하거나, 여성성이 강조되는 외모는 종교적으로 금기로 여겨진다
따라서 긴 머리, 화장, 귀걸이, 염색 등은
‘남자가 여자처럼 보이려는 시도’로 간주되며, 이는 곧 신의 창조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른 나라도 이런 법이 있을까?
인도네시아 외에도 일부 국가에서는
남성의 외모를 제한하는 법률이나 규범이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사례가 있다.
▪️ 🇮🇷 이란
- 남성의 포니테일, 긴 머리, 염색, 타투 등이 ‘비이슬람적 외형’으로 간주되어 단속 대상
▪️ 🇰🇷 과거 한국 (1970년대)
- 박정희 정권 시절, 긴 머리 단속령이 시행되어
공공장소에서 남성의 장발이 강제로 잘리는 일이 실제로 발생
즉, 이는 단순히 종교의 문제를 넘어서,
권력과 통제가 ‘스타일’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마무리 : 머리카락은 자유다. 하지만 그게 통하지 않는 곳도 있다
지금 한국에서, 혹은 대부분의 자유 국가에서
남성이 머리를 길렀다고 문제 될 일은 없다.
오히려 ‘머리 길이로 판단하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자기 표현이 범죄가 되는 현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한 보수성이나 고정관념을 넘어서
법과 종교, 문화, 권력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자유’라는 단어가 지역과 체제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머리카락 하나로도 누군가의 자유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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